[후쿠오카 여행] 첫째 날, 하코자키구(筥崎宮) 신사와 도초지(東長寺) 해외여행

인천공항 제2터미널이 생기고서 처음으로 가보았다. 1터미널에서 2터미널까지 가는데 너무 한참을 가는지라, 더구나 저멀리 2터미널이라는 건물이 보이는데 버스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서, 리무진 버스 속에서 "새벽 일찍 가다 보니 졸다가 버스에서 내리지 못해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것 아닌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제 터미널이 두 곳인 시대이니 깜빡 하다가는 다른 터미널에 가서 헤매는 잘못을 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겠다. 어쨌든 잘 도착하여 기계를 이용하여 캐리어를 보냈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후쿠오카에 9시 20분에 도착했다.
2009년에 일본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으니, 9년만에 일본땅을 밟은 셈이다.
입국심사를 하기 전에 지문등록부터 요구한다. 줄이 길어서 시간이 걸릴 뿐이지 입국심사는 까다롭지는 않았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가니 바로 캐리어를 찾을 수 있었다.

이제는 렌트를 하러 가야 한다. 공항 밖에서 대기중인 Budget Rent의 자동차를 타고, 자동차를 렌트할 사무소에 갔다. 공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 걸리지는 않았다. 다만 앞에 몇 팀이 대기 중이어서 조금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차를 3대를 렌트 하기로 했는데, 1대는 나중에 도착하는 일행이 가져오기로 되어 있어 두 대만 빌렸다. 두 대를 빌리는 수속을 밟고 있는 사이에 부산에서 출발한 일행도 합류하여 1인만 제외하고 모두 모인셈이 되었다.
프리우스를 빌렸는데, 처음 타보았는데 생각보다 좋다.

어느 덧 시간은 12시를 넘겨서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점심은 계획상으로는 원조 하카타 멘타이쥬(元祖博多めんたい重)에서 명란밥을 먹기로 되어 있었다. 멘타이쥬 명란밥은 모츠나베(곱창전골), 함바그와 함께 후쿠오카에 오면 꼭 먹어야 하는 3대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공항 근처의 Budget Rent 사무소를 출발하여 후쿠오카 시내에 있는 멘타이쥬로 이동했다. 자동차에 장착된 내비게이션으로 목적지를 설정하는 데는 전화번호를 아는 것이 유용했다. 목적지를 입력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우리 같은 외국인에게는 번호만 입력하면 되니 편했다. 어쨌든 일본에서 운전은 처음 해보니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조심 하여 멘타이쥬까지 도착했다. 처음이지만 다행이었던 것은 시내 제한최고 속도가 30~50Km여서 속도를 내지 않아도 되었고, 일본 운전자들은 앞차가 천천히 간다고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제는 멘타이쥬에 도착해보니 줄이 너무 길어서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았고, 근처에 주차하기에 마땅한 곳을 찾기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결국 명란덮밥 먹는 것을 포기하였다.

사실 후쿠오카 명란 하면 1994년도에 비스켓 위에 명란을 얹어 캐비어 먹는 것처럼 먹었던 일이 생각난다. 당시는 일본 경제기획청 경제연구소에 3주간 파견을 갔었는데, 출근 첫날 환영식을 해주면서 간단한 음료와 함께 비스켓에 명란을 얹어 주었다. 그러면서 그 명란이 후쿠오카에서 만든 것인데, 후쿠오카는 한국에서 배워온 것이라는 얘기도 덧붙여 주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신안 앞바다에 좌초된 고려시대의 배에서도 젓갈이 나왔다 하는데, 사실 소금이 귀하던 시절에는 젓갈은 요즘과 달리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고 한다.

어쨌든 점심은 먹어야 해서 우선은 호텔부터 가서 주차를 하고 밥을 먹기로 했다. 문제는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서 올라오니 복합건물이라서 호텔을 찾아가는 데 많은 애를 먹었다. 우리 호텔이 있는 캐널 시티는 43,500 평방미터에 "도시의 극장"을 표방하고 재개발된 곳으로, 호텔만 해도 두 개가 있고, 비지니스빌딩, 그 사이를 흐르는 운하 등으로 대단히 복잡한 곳이다. 충분한 정보 없이 호텔 옆으로 주차하는 입구가 있어 들어가서 주차하고 나온 것이 잘못이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겨우 호텔에 찾아 가서는 체크인을 하였다. 체크인을 하면서, 한국어를 하는 프론트 직원(아마도 우리나라 사람이었으리라)에게 식당을 추천해달라고 하니, 호텔 바로 옆에 있는 이자카야 핫슈(八州)를  추천해준다. 핫슈에 가니 점심시간으로는 다소 늦은 시간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어렵게 자리를 잡고서 식사를 주문하여 먹었는데, 나는 소고기덮밥과 우동을 시켜 먹었다. 사람수에 비해 음식주문 건수가 많다 보니 식당 종업원이 혼동되는 모양이다. 소고기덮밥은 간장에 볶아서 다소 짰으나 밥과 먹으니 먹을만 했다.


점심식사를 한 후에는 하코자키구(筥崎宮) 신사에 갔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에 에러가 있었는지 가는 길을 바로 찾지 못하고, 중간에 엉뚱한 곳에 들렀다 제대로 찾을 수 있었다. 하코자키구 신사는 筥崎八幡宮라고도 하는데, 일본의 3대 八幡宮으로 꼽힌다고 한다. 목요일 오후라 그런지 대체로 한산해 보였다. 


여기에서 최종 도착자를 만나서 筥崎宮花庭園으로 갔다.
筥崎宮花庭園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箱崎大茶会를 연 지 4백년이 지난 1987년에 地下鉄2号線 「箱崎宮前駅」을 개통한 것을 기념하여 만든 정원이다. 수국이 유명하며, 계절별로 많은 꽃이 핀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 휴무일이어서 입장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겨우 레스토랑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가면서 핀 꽃을 보는 데 그쳐야 했다.


다행인 것은 레스토랑 앞에 벚꽃이 화창하게 피어서 올해 들어 처음으로 벚꽃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벚꽃을 한참 동안 감상하고 난 후에 다시 하코자키구 신사로 돌아오면서 꽃을 보았다.



하코자키구 신사로 돌아와서는 본전을 한 바퀴 돌며 신사를 살펴보고 나왔다.

신사에서 나와 도초지로 향했다. 도초지는 멀지 않았고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도초지에 도착하니 절 안에 무료 주차가 되는데다 공간이 넉넉하여 쉽게 주차할 수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늦게 도착하여 도초지의 핵심인 후쿠오카 대불을 보지 못했다. 대불을 보려면 오후 4시 45분전에 입장할 수 있어야 한다. 아래 사진은 후쿠오카 대불인데, https://yokanavi.com/ko/spot/26928 에서 가져왔다.
후쿠오카 대불은 1988년부터 조각하기 시작하여 4년간의 세월에 걸쳐 완성되었다고 한다. 높이 10.8m, 무게 30t. 목조(노송나무)의 좌상으로 일본에서 가장 큰 대불이다. 높이 16.1m의 광배(등 뒤의 불꽃 모양)는 7불 및 13불도 새겨져 있으며, 뒤쪽 벽면에는 5000구에 이르는 작은 불상이 모셔져 있다.


도초지에는 본당에 천수관음보살이 모셔져 있는데, 부동명왕(왼쪽), 천수관음(중앙), 홍법대사(오른쪽) 순으로 모시고 있다. 그런데 그 유명하다는 천수관음은 정작 금색 상자 안에 안치되어 있어 볼 수 없었다. 1년에 한 두 번 공개한다고 한다.
도초지에 소장된 천수관음보살은 헤이안 시대에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한 그루의 나무에 불상을 조각했다고 한다. 높이87cm의 작은 조각상임에도 불구하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불상으로 메이지시대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천수관음보살을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경내의 여기저기를 살펴볼 수는 있었다.


먼저 눈에 띈 것은 목조 5층탑이다. 홍법대사가 가져온 석가의 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2011년에 건축되었다고 하는데, 금장이 잘 관리되어 마치 얼마 전에 건축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벚꽃도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또한 롯카구도(六角堂)가 본전 앞에 있는데, 이는 회전하는 6구의 지장보살과 안치당으로 구성된 롯카쿠도는 형태적, 기능적으로 뛰어난 불전으로 후쿠오카시가 지정한 건축물이다. 1842년 하카타에 거주하던 분고야 에이조(豊後屋栄蔵(별칭:반자이로 소데히코))가 나고야에서 부서 서쪽 이하 지역의 상인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나고야의 신사 및 사원 건축의 장인이었던 ‘이토 헤이자에몬(伊藤平左衛門)’을 불러 건립하여 기부한 것이라 한다. 안의 육각형 쌍바라지문에는 당시의 문인과 서화가의 글과 그림이 소장되어 있다. 매월 28일에 일반공개된다. 이러한 사항을 잘 몰라 사진에 담아 두지 못해, 아래 사진은 https://ja.wikipedia.org/wiki/%E6%9D%B1%E9%95%B7%E5%AF%BA#/media/File:Toucyou_Buddhist_temple_2011PC.jpg 을 인용한다.


아래 사진은 본전 좌측 뒷편에 있는데, 건물은 역사성이 있어 보였으나 이름은 없었다.







덧글

  • 자연인 2018/03/31 12:09 # 답글

    筑前國에는 一之宮 후보로 住吉神社와 筥崎宮가 있다고 한다. 大日本一宮記 등 근세의 문헌은 筑前国의 一之宮을 筥崎宮으로 하고 있으나, 筥崎宮을 一之宮이라 하는 중세 이전의 사료는 없고 근세가 되면서부터 나온 설이라고 생각된다. 이에 반하여 住吉神社을 一之宮으로 한 것은 建武元(1334)年인 것이 남아 있다. 그러나 南北朝 이전의 기록은 없고, 처음부터 住吉神社가 一之宮이었다고 하는 증거는 없다. 一代一度神宝奉幣에 보관한 것이 一之宮이라 하는 것의 하나의 기준(目安)이라 생각되고 있으나, 左経記에 의하면 寛仁元(1017)年의 筑前国에서는 住吉神社와 함께 宗像大社와 香椎宮이 奉幣에 보관되어 있다. 어느 신사도 一之宮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社格과 由緒를 가지고 있으나, 어느 신사에도 一之宮라 여겨지는 기록은 없다. 따라서 정황적인 증거로부터는 住吉神社가 당초부터 一之宮이었다고 추측되나, 戦禍 등에 의해 쇠퇴하여, 古記録・神宝の類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戦国末에는 社殿도 없고 神官도 부재한 모습이었다. 이렇듯 住吉神社가 쇠퇴하여 一之宮의 기능을 맡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대신에 筥崎宮이 一之宮을 칭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출처: http://www5f.biglobe.ne.jp/syake-assi/newpage6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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