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여행] 셋째 날, 아리타 지역(도잔신사, 이삼평비, 이즈미야마자석장, 석장신사, 이삼평묘소) 해외여행

아침에 료칸에서 식사를 마치고 8시 30분에 체크아웃을 한 후에 아리타로 향했다. 다케오에서 아리타까지는 가까워 25분 정도 걸렸다. 맨 먼저 도잔신사(陶山神社)를 방문하기로 했다. 도잔신사 앞 동네에 관광객을 위한 주차장이 있었고 토요일이었지만 아침 이른 시간이라서 주차공간은 넉넉했다. 주차를 한 후에 도잔신사로 향했다.

도잔신사는 1658년에 오우진 천황을 주신으로 하고 사가 번을 일으킨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와 아리타야끼(有田焼) 도자기의 신으로 추앙을 받고 있는 도조 이삼평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라고 한다. 도잔신사는 철길 건너편에 있었다. 도잔신사 앞을 지나는 철길은 사세보선(佐世保線)인데, 사가현 기시마군 고호쿠정에 위치한 히젠야마구치역과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에 위치한 사세보역을 잇는다고 한다. 철길을 지나자 마자 아래 사진과 같은 신사 입구의 풍경이 펼쳐진다.



 
오른편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면 도잔신사 본전이 나타난다. 계단 양편으로는 도자기가 올려져 있다. 계단을 오르며 뒤돌아서 주변 마을 풍경도 살펴보았다.


본전 앞의 양 옆에는 대단히 큰 도자기가 도열하고 있다. 귀한 것은 만져볼 수 없게 철망 안에 넣어둔 것도 있다.





본전에 올라가는 계단 양 옆에도 아래 사진에서처럼 석상과 도자기 등이 도열하여 있다. 역시 도자의 신을 추모하는 신사가 맞긴 맞다.




도잔신사 좌측 옆으로 돌아서 가면 이삼평비로 향하는 계단이 나오고, 그 계단을 지나 조금 더 오솔길을 걸으면 잘 닦은 길이 나온다.


이삼평비로 향하는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아리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산자락에는 마을 공동묘지도 있다.



좀더 올라가니 이삼평비가 멀리 보이며, 계단길이 나온다. 이삼평비는 이삼평의 공적을 찬양하고자 자기 창생 300년을 맞이한 1917년에 세워졌다 하는데, 비에 올라가기 전에 좌측으로 보니 이 비를 세우기 위해 자금을 기부한 사람들의 명단이 새겨 있는 기념비도 있다. 계단길을 따라 올라가보니 비에는 陶祖李参平碑라고 새겨져 있다. 이삼평은 임진왜란 시에 조선에서 큐슈로 끌려온 도공이라고 하는데, 공주 출신이라는 설과 남원 출신이라는 설이 나뉘어 있다. 정상부에 비가 있어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는 느낌이다.






이삼평비에 오르며 본 동네풍경도 정상에 있는 이삼평비 옆에 서니 다르게 보인다. 마을을 지나는 도로도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우리는 단체로 사진을 찎으며 여기에 온 것을 기념했다.


이삼평비를 보고 내려와서 우리는 동네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도자기 판매도 겸하는 집이어서 그런지 도자기 잔에 커피를 내놓았다. 커피를 마시며 도자기도 구경했는데, 비요마을에서 본 도자기가 좀더 고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마신 후에는 이즈미야마자석장(泉山磁石場)으로 향했다. 이즈미야마자석장은 이삼평이 자기에 들어가는 도자를 1616년에 발견하여 아리타 지역이 도자기 생산지로 번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이즈미야마자석장에 가니 출입은 금지되어 있고 주변에서만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우선 이즈미야마자석장임을 알리는 비석을 먼저 사진에 담았다.



다음으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이즈미야마자석장을 살펴보았다. 산을 하나 깍아내고 더 깊게 파들어간 두 개의 굴이 눈이 띄었다. 이렇게까지 엄청난 자석을 파내서 만든 도자기가 얼마나 되었을까 생각하니, 일본의 도자기 사랑이 이해될 듯도 하다. 그런데 이즈미야마자석장은 출입이 금지되어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었다. 대신 이즈미야마자석장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안내문을 살펴보았다.



이 비석 안내판 옆에 있는 산의 흙을 만져보았다. 역시 일반 흙과는 촉감이 달랐는데, 약간은 촉촉한 데다 회반죽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이즈미야마자석장을 살펴보고 나오는데, 우측으로는 도자기를 굽는 가마 형상의 도공지비(陶工之碑)가 있다. 당시 사진을 찍지 못해 다른 사이트에 있는 사진을 빌어왔다.


그리고 건너편을 보니 마을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마 도공들이 건너편 마을에 살며 자석장에 와서 작업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새롭게 보였다.


우리는 이렇게 이즈미야마 자석장을 살펴보고 100여 미터 떨어져 있는 이시바신사(石場神社)를 찾아갔다. 이시바신사는 이즈미야마자석장의 산신을 모시는 신사이다. 그동안 버려져 있다시피 했는데, 아마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많이 찾게 되면서 나름 정비하고 정돈하여 공개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들어가는 입구는 고즈넉한 느낌이다.




입구에서 조금 걸어 들어가자 바로 본전이 나타났다. 본전 옆으로는 한복 차림의 이삼평 상이 있다. 이삼평 상은 언제 제작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조선에서라면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을 도공 신분을 공(公)이라는 경칭까지 써서 떠받드는 것을 보면 일본인들이 얼마나 이삼평을 존중했는지를 알 수 있다.



본전과 이삼평 상을 하나로 담고 싶어 각도를 열심히 찾아 사진에 담아 봤다.


이삼평 비 옆으로는 커다란 돌로 만든 비석이 있는데,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절벽에도 신사에서 모시는 신들로 여겨지는 작은 상들이 절벽을 깍아내고 안치되어 있었다.



이렇게 신사 주변을 살펴보고, 신사 본전을 살펴보니 문짝이 하나 떨어져 나가 있고, 안에는 일본 춘화가 걸려 있었다. 춘화가 어떤 의미로 걸려 있는지 의문도 들고 충격으로 다가 왔다. 마지막으로는 우리는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신사에서 나왔다.

이시바신사를 떠나 이제는 이삼평이 묻혀 있는 묘소로 향했다. 이삼평 묘소는 이시바신사에서 1.8Km 떨어져 있어 승용차로는 5분 내 거리에 있었다. 마을 안에 있는 공동묘지의 위쪽 부분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안내묘비가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비명은 이삼평의 일본 이름인 카나가에 삼베에를 우선해 표기하고 조선의 이름인 이삼평은 괄호 안에 표기되어 있다. 묘비에 따르면 이삼평의 묘소가 발견된 것은 1959년이라고 하며, 1967년에 마을의 사적으로 정했다고 아리타초 교육위원회가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묘소까지 보고 나니 조선도공 이삼평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정리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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